민족 고유의 선도는 한인의 뜻을 받아, 한웅으로부터 단군으로 그 맥을 면면히 이어왔으며, 삼국시대에는 『화랑도』, 『조의선인』, 『사울제도』라는 국가적인 인재 양성법으로 널리 행해져 왔으며, 조선시대를 거쳐오며 무현, 무상, 무운도사의 대를 이은 청운도사님의 제자, 청산선사(비경선사)님의 맥을 이어, 국선도의 정통적인 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국선도가 사회에 보급된 연혁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1967년 청운도사의 명에 따라 구활창생의 사명으로 청산선사(비경선사)님께서 산을 내려오셔 세상에 국선도라는 이름으로 『밝달』또는『밝돌법』이라는 민족고유의 선도법인을 보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청산선사께서는 사회에 국선도법을 보급하고자 하였으나 세상에는 '단전호흡'이라는 말조차 전무하고 『국선도』라는 것은 더 더욱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의와 실기시범을 통해 국선도 수련법과 수련의 효과를 전하셨습니다. 국내 각 TV 등 매스컴에서 산중도인이 나타나셨다 하여 주목을 받으셨으며 국선도 책을 저술하여 널리 알리기도 하셨습니다.
1970년 이후에는 일본 후지TV, 일본TV, 영국 비즈니스TV, 미국 시카고TV 등에서 국선도를 보급하는 국제적 활동을 펴시고 국내외의 수련원을 개설하여 일반인도 누구나 국선도를 배우고 익혀서 실익을 얻도록 하셨고 국선도 책을 더욱 자세하게 편찬하셨습니다. 또한 국가기관, 단체, 대기업 등에 국선도를 강의 및 지도하셔서 전국민적 국선도 보급의 기틀을 마련 하셨습니다.
1980년 이후에는 정신문화연구원, 공무원 교육원, 내무부 연수원, 삼군사관학교 등에서 정식교육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어 국가적 차원의 인재양성 교육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 후 많은 기업체, 기관, 문화센터 등의 수련원과 각 지역에 국선도를 수련하는 도장 즉 수련원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에는 교육부에서 비영리공익법인인『사단법인 국선도법연구회』로 등록하였습니다. 청산선사님의 뜻에 의해 많은 지도자들은 맥을 이어 국선도를 보급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1997년 국선도 대학의 개설 이후 많은 지도자가 배출되어 국내외 100 여 개의 수련원이 개설되어 있으며, 또한 많은 수련원을 개설하기 위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한양대, 단국대, 동덕여대, 용인대, 원광대, 동국전문대 등 전국 대학에서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어 대학생들에게 전통적 맥을 이은 우리 수련법을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영동대학교에서는 국선도 학과를 개설하여 국선도의 학술체계를 마련하여 국선도의 기틀을 더욱 튼튼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선도의 연혁 속에서 세계발전의 흐름을 봅니다. 새로운 천 년의 시작을 앞두고 국선도 도맥을 올바로 세우고 보급과 발전의 틀을 이룩한 것은 이제 준비된 국선도가 세계인류와 우주 생명체가 일화되는 새로운 천 년으로 달려갈 기둥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수 많은 국선도의 지도자들은 국선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하나로 일화하여 전인류의 심신건강증진에 기여하여 구활창생의 숭고한 뜻을 실천해나갈 것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국선도의 수행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왔습니다. 국선도의 스승님들께서 밝히시기로는 그 역사가 무려 9천 7백여 년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시대 훨씬 이전부터 국선도 수련법이 전해져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득한 옛날 우리 겨레는 참으로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우리 겨레의 나라를 「군자국(君子國)」이라 부르며, 그 아름다운 풍속을 높이 찬양했습니다.
중국의 고서(古書)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국」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하얀 옷을 즐겨 입는다. 그들은 서로 양보하길 좋아한다. 또 바깥 나들이 할 때는 양 옆에 호랑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남에게 양보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맹수의 왕 호랑이까지 감화시켜 애완견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큰 깨달음을 얻은 도인(道人), 성자들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옛 기록들에
국선도는 경천사상(敬天思想)과 태양숭배사상(太陽崇拜思想)을 가진 우리 선조들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려고 보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에 올라가 깊은 숨쉬기를 하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렇게 수행을 하던 사람을 선인(仙人, 人) 또는 道人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련법은 삼국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보편화 되어 있었고, 명산대천을 순례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던 화랑도, 사울아비, 조의선인들의 수련법이 국선도입니다. 최치원 선생께서 쓰신 난랑비 서문에서 "우리민족에게는 고유한 현묘한 도가 있다. 그 도는 유, 불, 선의 사상을 모두 포함한 도이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玄妙之道, 花郞道, 風流道, 國仙道, 밝돌, 밝달, 밝돌법, 밝도가 모두 국선도의 옛 명칭입니다. 국선도는 우리민족 고유의 道法으로서 이 道가 흥성하던 고조선, 고구려, 신라 등, 상고시대에는 우리민족이 가장 강성하던 시대였으나 이 玄妙之道가 쇠퇴했던 고려, 조선시대 이후에는 도교와 불교, 그리고 유교와 서학 등의 事大사상에 빠져 주체성을 잃고 국운도 쇠퇴하던 시기이며, 孔子께서 君子가 사는 나라라 하여 경외하고 중국인들이 "군자불사지국"이라 하고 『해동성국』이라 칭하여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東夷族이 흥성하던 시대에는 국선도(민족고유의 도, 밝달, 밝도, 밝돌)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仙家書나 중국 선가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광성자(廣成子)라는 仙人이 있습니다. 광성자는 上古의 선인입니다. 선가서 『靑鶴集』은 仙道의 始原이 광성자라고 밝혔습니다. 광성자가 언제 어디 사람이며 어떻게 선도를 닦아 선인이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황제(黃帝)가 靑丘땅에서 광성자로부터 선도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제는 비록 중국 역사에 등장하지만, 실은 우리겨레인 東夷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선도법을 전수받은 청구 땅도 동이사람들이 살던 곳이며, 광성자 역시 동이사람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광성자가 전했다는 선도법은 오늘날까지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왔으며, 청산선사는 선도법의 원형이 『밝돌, 밝달』이며, 우리나라의 옛 성인들께서는 모두 『밝달법, 밝돌법』을 닦으셨다고 밝혔습니다.
선가서 『靑鶴集』에는 금선자(金蟬子)라는 선인이 등장하는데, 금선자는 卞沚가 쓴 『記壽四聞錄』이란 글을 인용하여 우리나라 선맥에 관해서 이런 얘길 전했습니다. " 아득한 옛날에 광성자란 선인이 있었다. 명유(明由)가 광성자한테서 선도를 전수받았다. 桓仁眞人(桓因天帝)은 명유의 제자다. 환인진인은 아들 桓雄天王한테 선도를 전했다. 환웅천왕은 세상에 나가 동방의 백성들을 교화했다. 그는 風雨와 五穀 등 인간사 3백 60여가지 일을 주관했다".
檀君은 환웅천왕의 아들이며, 단군이 아버지를 이어받아 백성을 교화하자, 九夷 백성이 모두 단군을 천왕으로 모셨습니다. 단군께서는 후에 아사달산으로 들어가 선인이 되셨다. 하였습니다. 상고의 三聖(桓因천제, 桓雄천왕, 단군성조)은 우리 고유의 선도법으로 백성을 교화하셨을 것입니다. 단군성조의 건국정신인 『홍익인간사상』도 이 선도법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국선도는 단군시대와 그 맥이 닿아있고 우리민족 고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인지 민족의 수난기에, 예를들면, 고려의 몽고침입기라든가, 구한말 일제식민통치기에 맹렬히 부활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국가제도와 민간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던 『밝달사상』은 불행하게도 선불습합(仙佛褶合) 과정에서 사찰의 산신각(山神閣)으로 포함되어 버렸으며 이에 앞서 선무습합(仙巫褶合) 과정에서 무교(巫敎)에 편입되어버렸습니다.
국선도의 역사는 아주 오랩니다. 수련법이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습니다. 국선도 의 스승님들께서 밝히시기로는 그 역사가 무려 9천 7백여 년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시대 훨씬 이전부터 국선도 수련법이 전해져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득한 옛날 우리 겨레는 참으로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우리 겨레의 나라를 「군자국(君子國)」이라 부르며, 그 아름다운 풍속을 높이 찬양했습니다.
옛 기록들에 따르면,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삼황(三皇) 중 한 사람인 황제(黃帝)가 「청구」 땅 공동산에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구」는 「군자국」처럼 우리 겨레가 세운 나라였습니다. 자부선인은 청구국의 유명한 큰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황제가 와서 가르침을 받을 정도로 아득한 옛날의 우리 나라엔 바른 도(道)가 널리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차츰 도(道)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참된 도인들은 세속을 떠나게 되어 산중에 은거하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도법(道法)을 전했습니다.
고조선 시대에 유위자(有爲子)라는 현인(賢人)이 살았습니다. 유위자는 사람들이 도를 멀리하여 세상이 혼탁해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수행(修行)의 아름다운 기풍을 되살리고자 애썼습니다.
유위자의 노력으로 바른 도(道)가 한 때 세상에 소생하는 듯 했으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행자의 아름다운 삶보다 물질과 권력, 쾌락에 더 마음을 빼았겼습니다. 세상의 풍속은 점점 더 혼탁해지고 결국 고조선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물계자라는 분이 우리의 『밝달』도법(道法)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들의 수행 전통은 신라의 화랑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백제에서는 사울제도를 시행하여 그 전통을 이어나갔습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제도는 많은 인재 양성에 지대한 영향을 했습니다.
그후, 도교나 불교, 유교와 서학 등의 외래 사상들로 인하여 민족 고유의 밝 사상은 그 명맥을 산중에서만 이어 오다가 근래 청산선사에 의해서 『밝달사상』의 원전이 「국선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엔 물계자라는 분이 우리의 도법(道法)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들의 수행 전통은 화랑과 사울과 조의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신라의 화랑, 백제의 사울, 고구려의 조의들은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자연을 벗삼아 심신(心身)을 연마했습니다. 그 결과 지(智)ㆍ인(仁)ㆍ용(勇)을 겸비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민족고유의 심신수련은 도(道)가 널리 펼쳐졌던 시대, 옛 선인(先人)들의 유풍(遺風)을 따른 것입니다.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선생은 「난랑비서문」에 이런 얘길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엔 본래 우리 고유의 신비롭고도 오묘한 도(道)가 있었다. 이름하여 풍류도 (風流道)라 일컬었는데, 이 도(道)로써 모든 백성을 교화했다.』
요즘에 「풍류」의 뜻이 많이 달라졌지만, 원래 「풍류」란 우주 기운의 흐름, 대자연,하늘의 섭리와 질서란 뜻이었다.』 풍류도는 곧 우주의 질서, 하늘의 섭리에 따라 조화롭게 사는 도(道)이며, 국선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우리 도(道)는 산중 도인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비록 세상사람들에겐 아득하게 잊혀졌지만, 도맥(道脈)의 흐름은 한번도 끊기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왔습니다.
삼라만상은 성(盛)할 때와 쇠(衰)할 때가 있습니다. 도(道) 역시 마찬가집니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듯, 쇠한 다음에는 다시 성(盛)하게 마련입니다.
조선조 말엽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산중의 도인들께선 새 시대를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산중에 숨었던 도(道)가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조 말엽에 우리의 도(道)는 무운도인(無雲道人)이란 분한테 전해졌습니다. 무운도인께선 청운도인(靑雲道人)에게 도맥을 전하셨습니다.
일제침략기, 우리 겨레가 사상 초유의 혹독한 시련을 겪던 그 때는, 산중의 도인들께서 간절히 기다리시던 새 시대가 임박한 때였습니다. 해방 직후, 무운도인과 청운도인께서는 우리의 도를 세상에 다시 알릴 한 제자를 길렀습니다. 그 제자가 바로 「청산선사(일명 비경)」입니다.
청산선사께선 13세에 산중으로 들어가 우리의 도법을 모두 전수받은 뒤, 1967년에 하산하여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장구한 세월 동안 까맣게 잊혀졌던 우리의 도가 청산선사(비경선사)와 함께 드디어 세상으로 다시 나온 것입니다. 청산선사께선 17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도를 널리 알리시고 스승들께로 가셨습니다.
청산선사께서 처음 하산하셨을 당시, 세상 사람들은 도(道)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선사께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신비로운 도력(道力)을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맨 손으로 바위를 깨기도 하고 알몸으로 불 속에 들어가기도 하셨습니다. 초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도를 알리고 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청산선사님의 초인적인 도력을 직접 목격하고서야 많은 사람들이 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 미국 등지에서도 관심을 갖고 청산선사님을 초빙했습니다.
청산선사께선 단(丹), 단학(丹學), 단전(丹田), 단전호흡 등의 용어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일반인들이 그런 용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청산선사님으로 인해 비로소 알려졌고, 그 후 1980년대에 가서야 많은 수련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청산선사께서 세상에 나오신 뒤, 36년 동안, 우리 고유의 정통 도법인 국선도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국선도를 수련하여 심신(心身)의 건강을 얻었습니다. 국선도를 통해 밝고 평화로운 새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청산선사의 재 입산으로 인하여, 민족의 선도법은 청산의 제자인 국선도 법사들에 의해 「국선도」라는 이름으로 그 도맥을 이으며, 시중에서 그 한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산중에서는 수천 년의 밝달법인 민족의 선도가 계속 법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즉 시중에서는 국선도가 그 법을 펼쳐나가고, 산중에서는 도인들이 고유의 밝달법인 선도법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국선도는 현재의 「사단법인 국선도법연구회」 공익법인은, 국선도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지켜 나가고 있으며, 청산선사의 도법과 정통성을 이은 「밝돌법 국선도」는 보급 및 전수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그 조직을 분리하여 합리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어, 국내 및 국외의 각 지역수련원과 직장수련원 등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인 선도 단전호흡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선도법연구회를 기반으로 하여 그 정통성을 간직한 「밝돌법 국선도연맹」은 정법의 보급 및 전수를 담당하며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백두산국선도, 세계국선도연맹, 대한국선도협회 등이 있어 또 다른 선도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